대통령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거대 양당은 저마다의 셈법과 시간표에 따라 대선 후보를 확정, 마침내 대진표의 큰 틀이 짜여졌다.
하지만 앞으로 이어질 대선 레이스는 그 어느 때보다 피로하고, 눈살이 찌푸려질 것 같다. 아마 선거기간 내내 ‘대장동’과 ‘고발사주’, 가족이 연루된 ‘비리의혹’에 대한 폭로를 보고,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양당의 대선 경선과정에서 ‘네거티브(negative,음해성 발언·행동)’ 퍼레이드는 어김없이 펼쳐졌다. 마치 화가 나 있는 듯 여야는 당 내 경쟁 후보뿐만 아니라 상대 당을 향해 연일 인신공격성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지난 9월4일부터 10월10일까지 치러진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각 후보들의 네거티브 공세는 피아(彼我) 구분을 하지 않는 듯 했다.
‘약자나 시민을 대하는 태도에 우려’, ‘박정희를 찬양하던 분’, ‘음주운전 범죄 경력자는 공직 기회가 박탈돼야’, ‘그저 그런 후보와 불안한 후보’, ‘당 대표 시절 성적표는 빵점’ 등 서로에 대한 날선 말들이 연일 오갔고 한 경선장에서는 이른바 ‘형수 욕설영상’이 적나라하게 재생되기도 했다.
또 민주당은 이달 5일까지 치러진 국민의힘 경선과정을 두고 ‘정책과 비전은 없고 주술과 막말만 기억에 남아’, ‘비리 백화점’, ‘역대급 블랙코미디’,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구태 정치’, ‘혼탁 정치의 끝판 왕’ 등 상대 당을 향한 비방전에 한 치도 소홀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경선과정에서 후보들이 서로에게 쏟아낸 말들은 ‘뻔뻔하고 건방지기 짝이 없어’, ‘오만하고 막말하는 독불장군’, ‘정권이 설치한 의혹의 시한폭탄’, ‘못된 버르장머리 고쳐야’, ‘벼락출세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나’ 등 필터링 과정을 생략한 듯 한결 거칠고 사나웠다.
또한 상대 당 후보를 향해서는 ‘부동산 투기 마피아 두목’, ‘남의 고통이나 피해에는 전혀 관심 없는 소시오패스의 전형’, ‘여배우와 합의 보고 대선에 나서라’, ‘추악한 가면을 확 찢어놓겠다’ 등 저주에 가까운 극단적 용어까지 사용했다.
정치인들의 네거티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특히 이번 여야 경선에서는 뚜렷한 정치적 철학과 비전이 없는 후보들이 경쟁에 나서 자신의 존재감 과시에만 치중했고, 그 결과 건강한 정책토론과 검증과정은 물론 ‘원(One)팀’이나 요즘 유행하는 ‘깐부’에 대한 기대감까지 상실시켰다.
그리고 대중은 막말이라 일컫고, 누군가는 사이다 발언이라 포장한 이 말의 잔치들은 각 후보의 품격이나 자질뿐만 아니라, 경쟁 상대나 상대 진영 그리고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덕분에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 될 것이란 비관론이 팽배하다. 아울러 결국, 국민들은 최선(最善)도 차선(次善)도 아닌 ‘차악(次惡)’에 투표하게 될 것이란 불행한 시나리오까지 점쳐진다.
지난 2012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버락오바마의 재선을 앞두고 열렸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영부인인 ‘미셸오바마’는 “When they go low, we go high!”(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고 연설했다. 그리고 당시 전당대회의 모든 연사가 험하거나 상스러운 말, 사회를 분열시키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고 회자된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요즘의 우리 정치인들이 거침없이 내뱉은 말들은 인용해서 옮기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그리고 그런 날선 말들이 나름의 주도면밀한 정치적 계산에 의한 ‘전략’이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는 증거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부디 앞으로 이어질 대선 레이스에서는 건강한 정책토론을 펼쳐주길, 품격을 갖추고 점잖게 경쟁하며 네거티브나 마타도어(matador, 흑색선전)로 점철되는 정치는 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국민이 품고 있는 꿈과 희망은 네거티브나 정치적으로 계산된 마타도어에 얼룩질 만큼 저급하지 않으며, 국민들에게는 최선(最善)에 소중한 한 표를 던질 권리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