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은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전국 영·유아들의 학부모들에게 답답한 하루였을 것이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전국 1553곳에 이르는 사립유치원이 개학을 연기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형사고발·강제해산 등 교육당국의 초강수와 학부모들의 부정적 여론에 239곳만 개학을 연기하는데 그치며 투쟁 하루 만에 철회했다. 3자 입장에서의 객관적 시각은 정부와 한유총 모두 현실에 눈을 감아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의 한 장면이 교차됐다.
합리적 절충 없이 모두 자기 입에서 이해와 양보가 발사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듯했다. 최종적으로 누구의 입에서 그 이해와 양보가 터져 나올지, 그것이 누구를 향할지 알 수 없었으나 애꿎은 아이들을 볼모로 하는 그 모든 상황이 기막혔다.
분명한 것은 사명감을 바탕으로 유아교육에 헌신하는 대다수의 교육자들까지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조 단위 정부 지원금을 받을 때는 ‘교육자’라 했던 그들이 개학연기를 강행하겠다며 엄포를 놓을 때는 언제든 문을 닫을 수 있는 ‘자영업자’(“치킨집 닫을 때 종업원 동의를 받나”, “치킨집처럼 100%개인자산”)로 스스로를 비유할 때 학부모들은 배신감을 느꼈고
▲모 언론에서 입수한 한유총의 단체대화방 ‘3000톡’의 메시지 일부가 공개(‘학부모가 똥줄 타게 해야’, ‘폐원 예고하면 학부모가 들고 일어날 것’, ‘학부모를 불편하게 해야 정부에 이길 수 있다’)됐을 때 학부모들은 분노했다. 학부모를 ‘방패막이’로 삼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포로로 삼으려 했던 정황에 많은 국민들은 개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 전체 유형별 유치원 비율은 국·공립 21.1%, 사립 78.9%로 OECD평균과(국·공립 66.9%, 사립 33.1%)는 정반대 양상을 보인다. 전체 유아의 3/4인 약 50만 명이 사립유치원에 다닌다는 뜻이다.
동두천 관내 유치원 18곳 중 국·공립 11곳(61.1%), 사립 7곳(38.9%), 연천 관내 유치원 13곳 중 국·공립 11곳(84.6%), 사립 2곳(15.4%)으로 동두천과 연천은 국·공립 유치원의 비율이 높았다. 동두천·연천 관할 교육지원청 확인결과 관내 사립유치원 9곳 중 개학을 연기한 곳은 공식적으로 없었다.
교육지원청에서 사립유치원들과 연락유지, 설득으로 개학연기 방침을 철회하거나 돌봄서비스를 운영함에 따라 소속 유치원으로 정상 등원했다는 것이 교육지원청의 설명이다. 4일 이후 개학을 한 사립유치원은 ▲연간 학사일정(180일 이상)을 고려한 개학일 선정 ▲각 가정 사전공지 ▲돌봄교실 정상운영으로 혼선을 방지했고 각 가정에 불편을 초래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됐던 국가관리회계시스템(에듀파인)은 1단계 도입 의무대상(원아 200명 이상) 570곳 중 99.6%인 568곳이 도입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불씨는 아직 남아있다. 국회에 표류중인 유치원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과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그대로 수용하면 사립유치원 자율성 유지와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여전하다.
정부는 2022년까지 국공립 유치원의 비율을 25~40%까지 높인다고 하지만 많은 시간과 재원이 소요되는 과정임이 분명하고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때 결국 피해를 보는 쪽은 또 학부모와 아이들이다.
바라건대 정치적 사안이 아닌 정책적 사안으로, 사태의 본질에 심도 깊이 접근하고 합리적 절충점과 원만한 제도개선을 꼭 좀 이뤄냈으면 한다. 파열음 가득한 봄날, 이 같은 기막힌 러시안 룰렛이 반복되지 않기를 미래의 아빠로서 소망하며 조심스레 오늘 저녁메뉴를 치킨으로 정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