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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삼한사미(三寒四微)와 속수무책(束手無策)

GN시사신문 기자 입력 2019.01.30 14:06 수정 2022.05.20 14:07

흑백TV 화면 같은 뿌연 풍경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와이퍼가 뽀드득 신경질을 내며 차창을 연신 닦아도 별반 나아지는 게 없는 요즘, 삼한사미(三寒四微)라는 신조어가 자주 들린다.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한 전통적 겨울 날씨인 ‘삼한사온’(三寒四溫)에서 온(溫)자 대신 미세먼지의 ‘미(微)’자를 대입한 이 신조어는 3일간 한파가 이어지다 물러나면 4일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는 뜻이다.

2015년 173회, 2016년 90회, 2017년 128회였던 전국 초미세먼지 주의보는 2018년 한 해 동안 316회(전년 대비 2.4배 증가) 발령됐고 경기도만 한정해도 43회이니 어림잡아 보름 남짓한 장마기간의 세 배를 미세먼지에게 시달린 셈이다.

올해도 변함없는 공습을 예고하듯 비상저감조치는 처음으로 사흘 연속(1.14~16)시행됐고 그렇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미세먼지는 감기, 천식, 기관지염 등의 호흡기와 심혈관, 피부, 안구질환 등 각종 질병에 대한 불안을 넘어 우리 일상 풍경을 바꿨으며 앞으로도 바꿔갈 듯하다. 많은 이들이 집을 나서기 전 미세먼지 예보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챙기거나 유치원과 학교의 운동회·체육활동은 실내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자출족의 바퀴는 묶였고, 프로야구 경기취소로 관중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으며, SNS에는 ‘끔찍한 풍경 납치범’, ‘은밀한 살인자’ 등 고통스럽고 불편했던 일상에 미세먼지를 원망하는 글도 종종 눈에 띈다. 종일 태아 걱정인 임산부들은 실외활동을 피하고 가급적 실내에 머물지만 카페·쇼핑몰·극장 등 안전하다 믿었던 실내의 미세먼지 수치도 실외와 차이 없거나 오히려 높다니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는 듯하다. 그야말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미세먼지의 근본 원인은 노후 경유차, 석탄발전 등의 국내 요인과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나 50~80%정도는 중국의 영향이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된다.

지난 2016년 소박하고, 맛있는 죄 밖에 없던 ‘고등어와 삼겹살’이 미세먼지의 주범이 되기도 했었고 ‘대책이 겨우 그거냐’는 국민들의 원성에 장관이 나서 고등어구이를 시식했던 ‘웃픈’ 기억도 있으며, 여전히 위협적인 자국의 공장지대에서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넘어온 것이 확실해 보이는 초미세먼지의 공습을 두고 ‘우리와 무관하다’, ‘우리 탓을 하기보단 한국 스스로 관리에 힘쓰라’고 말하는 중국의 입장에 국민들은 분개했다.

중국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유럽 국가들은 ‘장거리 대기오염 물질 이동에 관한 협약(CLRTAP)’을 맺어 주범국에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나 동북아에는 구속력 있는 협약이 없어 협의를 통한 개선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은 저렇게 뻔뻔할 수 있나 보다.

본지 취재 결과 정부 정책에 발맞춰 73개 지자체가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20개 지자체와 2개 도 교육청이 ‘실내 공기질 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는 준비 중이지만 동두천시와 연천군도 선제적으로 ▲어르신과 영·유아에게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 ▲노인복지관과 어린이집에 공기청정기 지원 ▲각 학교 공기정화장치 설치 ▲차량 2부제 등 경기도와 연계 또는 자체 대응력 확보에 고심 중이다.

하지만 지역의 환경, 조건, 인구분포, 특성이 반영된 맞춤형 대책마련과 지역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주도하는 창의적인 사업 추진은 아쉽다.

언젠가 마스크와 방독면이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암울한 미래가 온다면 신선한 공기도 지역격차, 빈부격차로 다가오지 않을까, ‘구×’, ‘프××’의 로고가 새겨진 명품 마스크, 방독면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우가 드는 답답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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