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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한국인은 뜨거운 국물 힘으로 버틴다고 한다. ‘밥심’ 다음으로 많이 쓰는 상징이다. 뜨거운 국에 밥 한 그릇 훌훌 뚝딱 말아먹고, 식의 표현이 흔하다.
한국인의 DNA에 새겨져 있는 듯한 국밥 사랑은 한국식 식문화의 시작과 맥을 같이 할 정도로 깊다. 준비된 국과 밥을 한 끼 식사로 내는 방식은 조리도 빠르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어 오래전부터 인기가 높았다.
우리 민족의 국밥 사랑은 조선말 문신인 최영년(1856~1935)이 지은 ‘해동죽지(海東竹枝)’ 속 ‘효종갱(曉鐘羹,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에 대한 설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해동죽지는 효종갱에 대해 ‘송이, 표고, 쇠갈비, 해삼, 전복 등을 온종일 푹 곤다. 밤에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무렵 사대문 안 대갓집에 도착하고, 국 항아리가 그때까지 따뜻해 해장에 더없이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 해장국인 것이다.
몸에 좋은 귀한 재료들을 종일 고아낸 후 남한산성에서부터 양반댁 밥상까지 새벽길을 꼴딱 걸어가 전했으니, 그 공이며 수고가 이만저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조선 시대의 뇌물 음식이었다는 설(說)도 있다.
이번에 만날 주인공은 국밥, 그중에서도 남녀노소 모두에게 국밥 계(界) ‘최고 존엄’으로 추앙받는 ‘곰탕’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속이 든든하고 건강해질 것만 같은 믿음이 솟구친다.
한결 포근해진 날씨 속 강변로를 따라 소요산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요교에 닿기 전 오른쪽으로 조선곰탕 간판이 보인다. 꽤나 널찍한 매장 전용 주차장이 말끔하게 정돈돼 있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니 한종명(65), 이순랑(63)부부가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지난 2009년 송내동에서 조선곰탕을 선보이기 시작한 이들 부부가 현재 위치(강변로 890)로 터를 옮긴 지는 올해로 5년째를 맞았다.
조선곰탕의 하루는 매일 새벽 가마솥에 불을 때는 일로 시작된다. 한 대표 안내에 따라 둘러본 매장 뒤편에는 참나무 장작이 어른 키만큼 쌓여 있었고, 한쪽에서는 난생처음 본 엄청난 크기의 가마솥이 무지막지한 장작의 화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한 대표는 “조선곰탕에서는 100% 사골만, 참나무 장작의 화력으로 24시간 진득하게 고아낸다”라며 “뽀얗고 진한 국물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힘이 불끈 솟을 것”이라고 맛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자 밑반찬으로 제공되는 김치와 깍두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영롱한 붉은빛이 자꾸만 식욕을 자극한 탓인지, 기자는 인터뷰 도중임에도 김치와 깍두기를 먹기 좋게 자르고 있었다.
이 대표는 “최고로 맛있는 김치와 깍두기를 위해 제일 좋은 재료들만 엄선하고, 매일 정성 들여 새로 담근다”며 “단골손님 중에는 김치, 깍두기 맛의 비법을 묻는 분도 꽤 많다”고 귀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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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는 “곰탕은 어떤 기교도 필요 없는 정직한 음식”이라면서 “불을 때고, 물을 끓이고, 열기에 지친 사골의 뼈와 살이 흐드러질 때까지, 사골이 품고 있는 모든 맛이 국물에 녹아들 때까지 고아내야 비로소 체면이 선다”고 말한다.
한 대표는 올해로 15년째 PTPI동두천챕터에 몸담고 있다. 챕터에서 해마다 추진하는 떡국 봉사에는 조선곰탕의 국물이 아낌없이 후원되며, 이때 곰탕 맛을 본 주둔 미군들도 어느새 곰탕의 매력에 빠져 종종 한국식 몸보신을 위해 찾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와병 중인 가족을 위해 양손 무겁게 포장해 가는 손님도 많다”면서 “곰탕은 속이 든든하고 쉽게 허기지지 않으며, 칼슘·단백질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기에 곰탕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곰탕은 한결같이, 우직하게, 정성 들여 고아내지 않으면 바로 티가 나기에 꾀를 부릴 수 없는 음식”이라면서 “우리 부부는 최고의 곰탕을 선보이는 것이 평생의 업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해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꿈”이라고 얘기하며 웃어 보였다.
‘곰탕’은 ‘뭉그러지도록 익히다’, ‘진액만 남도록 푹 끓이다’라는 뜻의 ‘고다’에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또 높은 영양가와 구수한 맛으로 조선 시대 임금님 수라상인 12첩 반상에 오를 정도로 인정받은 보양식이었다고 한다.
아침 해장, 든든한 점심, 혹은 퇴근 후 소주 한잔과 함께 반주를 곁들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곰탕. 이번에 곰탕에 맛을 들여버린 기자는 이 근처를 지날 때마다 조선곰탕을 찾을 것 같다. 기왕이면… 혼자보다는 좋은 사람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예약/문의: ☎866-8688
*영업시간: 오전 6시~오후 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