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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전 세계를 위협 중인 코로나19도 위협적이지만, 한껏 매서워진 겨울의 칼바람은 변함없이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추위로 인해 체온이 낮아지면 면역력이 저하되기 마련이다. 특히 겨울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와 함께 부유하는 100여 종 이상의 바이러스, 체내에 잠복 중인 각종 병원체와 맞서 싸우려면 면역력을 부단히 유지해야 한다.
면역력을 높이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단호박’은 베타카로틴을 풍부하게 함유, 비타민A의 공급원으로 작용해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돕고 노화를 방지하는데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오리고기’는 필수 아미노산 성분이 풍부해 해독 작용과 떨어진 기력 회복에 좋은 식품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회복기 환자나 어르신들의 보양 식재료로도 널리 쓰인다.
때마침 동두천에 맛과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잡은 단호박오리구이 전문점, ‘매초산성’(삼육사로 1324-15 소재)에 대한 소문을 듣고 지체 없이 찾아갔다.
탑동초등학교 진입 전 금말교를 건너니 10대 이상 충분히 들어설 법한 널찍한 주차장이 모습을 드러냈고, 바닥에는 매초산성으로 가는 길이 친절히 안내돼 있다. 주차장에서 매초산성에 닿기까지는 4~50여 걸음 정도면 충분할 듯 했다. 하지만 이 짧은 여정의 시작부터 여느 음식점들과는 ‘결’이 다름이 단박에 드러났다.
진입로 옆쪽에 자리 잡은 식물원과 안쪽으로 잎을 거의 떨어뜨린 나무들, 장독대, 추운 날씨에 살짝 얼어버린 작은 연못 등이 빚어내는 오묘한 정취가 자꾸만 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이어 마주한 매초산성은 유럽의 작은 교회와 같은 독특한 외관과 함께 산뜻·발랄한 색감을 뽐내고 있었고, 내부 인테리어 역시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꽤 널찍한 매장 규모와는 반대로 두툼한 테이블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자리를 잡았고 외형을 반 정도만 드러낸 서까래, 화덕인 듯 벽난로인 듯 용도가 궁금한 실내 장식, 질서 정연히 늘어선 화분들의 시퀀스는 발걸음을 한동안 입구 근처에 잡아뒀다.
이윽고 만난 최두리(62)·김종현(62) 대표 부부는 “매초산성은 올해로 31년째 운영 중인 젊은 노포”라며 “옥정에서 18년 머물다가 지금 이 자리로 옮긴지 13년 째”라고 말한다.
최 대표는 “다소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실내·외 디자인은 모두 남편의 작품”이라면서 “남편이 실내·외 디자인 개선과 유지를, 내가 음식을 도맡는 철저한 분업 형태로 운영 중”이라며 웃어 보였다.
김 대표는 “도심에 자리 잡은 여타 매장들처럼 테이블이 촘촘하게 붙어있는 구성 대신, 햇볕 드는 창을 따라 독립적 공간이 마련되도록 테이블을 여유롭게 배치했다”며 “인테리어가 뿜어내는 정취가 음식 맛의 맛은 물론, 식사시간의 정겨움도 더 깊게 만드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부부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테이블 위에는 다채로운 빛깔의 밑반찬들이 포진해있었다. 매초산성의 모든 밑반찬은 최 대표가 선별하고 공수해 온 재료로만 만들어져 손님상에 오른다.
이중 ‘궁채(줄기상추)’나물은 아삭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색다른 식감을 뽐냈고, ‘부추·묵무침’이 품은 향긋함은 치명적이기까지 했다. 또 고추·다시마 부각과 달콤한 누룽지가 만들어낸 ‘바삭’ 소리는 입과 귀 모두를 즐겁게 했으며, 비교적 익숙했던 샐러드마저 차별화된 깊은 고소함을 담고 있었다. 결국, 대표메뉴를 만나기 전 셀프 바에 들러 빈 접시를 다시 채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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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반찬의 매력에 연신 감탄하던 중 위용을 드러낸 매초산성의 대표메뉴, ‘단호박구이’(4인분 5만8000원)의 엄청난 포스에 하마터면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노란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단호박 틈으로 선홍빛 훈제오리, 쫄깃한 새송이 버섯, 톡톡 터지는 무화과 등이 터져 쏟아지는 듯 한 모습은 마치 밤하늘에 폭죽이 터지는 광경같이 그저 ‘장관’이었다.
최 대표는 “황토를 입혀 가마에 굽는 방식이 아니라 오븐과 특수 그릴을 이용해 기름기는 줄이고 담백함은 끌어올렸다”며 “우유보다 칼슘을 많이 함유한 단호박 껍질까지 남김없이 먹을 수 있도록 고안했다”고 설명한다. 즉 매초산성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제 레시피’인 것이다.
먼저 노란 호박을 껍질째 큼지막하게 뜨니 뜨거운 김이 피어오른다. 한 김 식힌 다음 조심스레 입안에 넣자 파삭한 껍질에서는 고소함이, 폭신한 속살에서는 달콤함이 가득 번진다.
이어 맛본 선홍빛 오리고기는 쫄깃한 식감과 담백한 풍미를 자랑했다. 훈연 향을 머금은 육즙은 잔뜩 갇혀있다 입속에서 사정없이 폭발한 반면, 오리고기 특유의 기름기는 깔끔하게 제거돼 젓가락이 잠시도 쉬지 못했다. 또 오리고기와 만난 깻잎은 향긋함을, 부추·묵무침은 담백함의 깊이를 더해줬고, 새콤한 겨자 소스는 녹진한 훈연 향을 배가 시켰다. 자칫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밑반찬의 구성마저 모두 최 대표의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단호박구이를 탐닉하던 중 뚝배기에 가득 담긴 들깨수제비를 만났다. 걸쭉한 국물을 입에 넣자 고소한 들깨향이 입안을 가득 휘감았고, 부드러운 미역과 쫀득한 수제비 반죽은 각자의 식감을 먼저 뽐내려는 듯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했다. 이내 최 대표의 진심과 정성이 전해지듯 가슴속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회색빛 도시생활 대신 전원생활의 여유를 꿈꾸다 매초산성을 열게 됐다는 최 대표 부부는 손님에 대한 배려와 나눔을 자연스레 실천 중이다. 여름과 가을을 거치는 동안 매장 주변은 대추·살구·매실·보리수·오디 등 온갖 계절과실로 풍성해지는데, 최 대표는 직접 담그는 과일청과 효소로 쓸 만큼만 제외하고는 손님들이 자유롭게 갖고 갈수 있도록 안내한다. 최 대표는 “손님들은 식사 후 맛난 과실까지 생겨서 좋고, 우리는 손님들께 하나라도 더 챙겨 드릴 수 있으니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잊을 만하면 매스컴을 장식하는 AI(조류독감)와 지난해부터 세계를 집어삼킨 코로나19의 습격 등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질곡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최 대표 부부는 첫 영업 때와 같은 메뉴, 재료, 레시피를 한 결 같이 유지하며 꿋꿋이 한자리를 지켜왔고 이는 연령을 불문한 수 많은 단골손님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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