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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어서’ 혹은 ‘기운이 없어서’ 등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찾는 보양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보약이 된다. 늘 ‘먹는 것에 진심’인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저마다 손꼽는 보양식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기자는 주저 없이 첫손에 추어탕을 꼽는다.
추어탕의 ‘추(鰍)’는 가을 추(秋)가 아닌 미꾸라지 추로 물고기 어(魚)자와 가을 추(秋)가 합쳐진 단어다. 때문에 사람들이 종종 가을에만 먹는 음식으로 오해하기도 하나, 추어탕의 주재료인 미꾸라지는 기력 회복·관절·혈액순환·소화기능 개선·두뇌발달·눈 건강·빈혈 개선 등에 탁월한 효능을 가진 보양식 재료계의 ‘최고 존엄’이다.
더위가 한풀 꺾인 9월의 어느 날, 내행사거리쪽으로 향하니 어르신들은 물론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자자하다는 ‘생골추어탕’ 간판이 보였다.
점심시간을 피해 느지막이 찾았음에도 최소 30대 이상 주차할 수 있을법한 널찍한 주차장에는 추어탕에 진심인 손님들의 차량이 여러 대 보였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김춘경(74)·이명숙(67) 부부가 반갑게 맞아준다.
김 대표는 “지난 2002년 건너편 자리에서 장사를 시작해 2007년 이 곳(삼육사로 1003)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약 20년간 꾸준히 추어탕을 끓이고 있다”며 “추어탕은 아내가 어려서부터 자주 먹었던 음식으로 장모님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아 손님들에게 선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 대표는 “서울식이나 전라도식이 아닌 우리 집 가풍대로 끓여낸 추어탕은 장사 시작 전에도 지인들이 비법을 물으며 장사를 권한 독보적인 맛”이라며 많은 손님들이 “한 번도 안 먹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극찬 하신다”며 웃어 보였다.
이윽고 매일 직접 담근다는 빨간 겉절이와 깍두기를 비롯해 다진 마늘과 파, 그리고 보기만 해도 바삭함이 느껴지는 미꾸라지 튀김 등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
양껏 썰어 접시 위에 놓인 겉절이와 깍두기는 기분 좋은 알싸함과 달큰한 뒷맛이 일품이었고, 맛보기용으로 제공한다는 통 미꾸라지 튀김은 고소한 향과 함께 ‘겉바속촉’의 진수를 보여줬다.
이어 김을 모락모락 내뿜는 ‘추어탕(9000원)’을 맞이했다. 한 김 식혀 황갈색 추어탕을 크게 한 숟가락 들어 올리니 진하고 걸쭉해 ‘진국’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한눈에 봐도 곱게 갈린 미꾸라지가 아낌없이 들어있음이 분명했고, 입속에서 진동하는 구수함이 허전 그 자체다. ‘명불허전(名不虛傳)’
홀린 듯 밥을 말아 겉절이와 함께 입 안 가득 넣으니 절묘한 조화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고, 부드러운 무청의 식감에서는 일종의 중독성마저 느껴졌다.
김 대표는 “제일 좋은 미꾸라지를 쓰는 것을 기본으로 매일 6시간 이상 정성들여 추어탕을 끓이기 때문에 무청이 부드럽고 국물의 깊이가 한 층 짙어진다”며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느라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일한다”고 말했다.
대개 산초가루가 놓인 다른 추어탕 집과는 달리 제피가루를 준비한다는 김 대표는 “우리 집만의 특색”이라며 “제피가루를 입맛에 맞게 적당히 넣으면 추어탕 맛이 한결 풍부해진다”고 얘기한다. 그의 말대로 제피가루를 톡톡 털어 넣자 매콤하면서도 톡 쏘는 향이 추어탕과 찰떡궁합의 조합을 보여준다. 때문에 기자의 숟가락은 더 바삐 움직였다.
생골추어탕의 또 다른 자랑은 ‘한방추어탕(12000원)’이다. 한약에 쓰이는 인삼, 백출, 백복령, 감초, 숙지황, 백작약, 천궁, 당귀 등 10가지가 넘는 약재를 넣어 일반 추어탕에 깊이를 더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허함, 피로감, 식욕부진, 소화기 질환에 효과가 있는 약재들을 넣었다”며 “언급한 약재 외에도 몇 가지가 더 들어가지만 공개하면 안 된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약 2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만큼 단골도 많다. 김 대표는 “동두천은 물론 연천과 전곡, 양주 등 인근 지역에서 10년 이상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많고, 할머니 손을 잡고 왔던 손자가 어엿한 고등학생으로 성장, 이제는 할머니를 모시고 찾아온다”며 “어떤 노부부는 덕정에서 손수레를 챙겨 와 한 그릇 드시고 한가득 포장해 가시고, 인근 요양병원 환자분은 힘겹게 걸어오셨다 한 그릇 드시곤 힘찬 걸음으로 나가신다”면서 웃어 보인다.
이어 “홍보나 배달을 하지 않았는데도 다녀가신 손님들이 SNS 등에 맛집 인증을 해주셔서 그런지 요즘에는 젊은 분들도 많이 찾으신다”며 “앞으로도 기력회복이 필요한 분들에게 한결같은 맛, 힘이 솟구치는 맛으로 보답하고 싶다”며 소박한 바람을 드러냈다.
가을의 문턱에서 기운이 없어 보양식이 고민이라면 지금 당장 생골추어탕으로 달려가 걸쭉한 국물을 들이켜 보자. 단언컨대, 한 그릇을 다 비우기 전 기력 회복이 시작될 테니.
*예약/문의: ☎861-5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