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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문화/스포츠

명소탐방 / 봄비문예관

GN시사신문 기자 입력 2021.08.26 13:43 수정 2022.05.20 13:44

전덕기 시인의 발자취 오롯이 담겨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작품이다. 언젠가 한 번쯤 들어봤을 이 시는 2030세대의 풋풋했던 학창시절 연애편지 속 수줍은 감정을 대신해 무수히 인용됐고, 마음만은 여전히 소년·소녀 감성을 가진 4050세대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

관내에도 시의 매력을 알려주고, 시민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문예관이 새로 개관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동원효실버센터(동두천시 생연동) 별관에 위치한 ‘봄비문예관’은 2020년에 준공됐다. 하지만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실버센터에 내원한 환자들에게만 부분 개방한 상태다.

주차장에서 맑은 공기와 자연을 느끼며 유유히 걷다보니 잘 정리된 진입로와 잔디밭 등 자연과 썩 잘 어울리는 2층 규모의 문예관이 시야에 들어온다.

문예관 안으로 들어가니 은은한 느낌의 조명, 과거와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인테리어가 마음까지 포근하게 만들어 준다. 이내 소탈한 웃음이 인상적인 윤동원 명예원장이 기자를 반갑게 맞아줬다.

윤 명예원장은 “저의 모친이기도 한 ‘춘우(春雨) 전덕기 시인’은 한 평생 의료 활동과 집필을 병행했다”며 “시인의 아호(雅號)가 담긴 이곳 봄비문예관은 모친의 시와 병원의 역사, 그리고 정신질환자들의 투병기 및 극복기가 세세히 기록된 문화유산으로 남기려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이어 “시인의 아호는 봄비라는 뜻으로 희망을 의미하고, ‘가화’의료재단은 화평, 화목, 화락에 박애정신을 더한다는 뜻”이라며 “사회 공헌과 봉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낸 단어”라고 얘기했다.

내부를 둘러보니 가장 먼저 시인의 촛대 수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촛대수집이 취미라는 시인에 대해 윤 명예원장은 “초는 스스로를 태워서 남을 밝혀준다는 의미”라며 “그래서인지 시인이 본인과 동일시 여기고 애착을 가진 것 같다”고 소개했다.

이윽고 시인의 삶, 그리고 애환이 담긴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시인은 정신질환자를 위해 문인이자 의료인으로서 쉼 없이 달려왔고, 재단의 연혁과 시화(詩話)에서 확인한 시인 삶의 궤적은 온통 헌신·희생·봉사로 점철 돼 있다.

지난 1977년부터 3년 동안 서울 국립정신병원에서 근무한 시인은 정신질환자들과 가족들의 어려움을 처음 알게 됐다. 그 후 1981년 동두천에 가화정신요양원을 설립, 정신질환자를 위한 의료복지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윤 명예원장은 “당시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치료시설이 전국에 국립정신병원 단 한 곳밖에 없는 등 사회적 분위기와 편견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오랫동안 정신질환자는 배척의 대상이었을 뿐 포용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시인은 가화정신요양원 설립부터 현재의 가화의료재단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난에 직면했지만 의료인이자 시인으로서 매순간 최선을 다했다.

윤 명예원장은 “20여 년 동안 봄비라는 이름으로 발간 중인 병원 계간지에는 다양한 병원
소식과 환자들의 투병·극복기는 물론 시인의 작품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며 “올해 89세인 시인은 최근까지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고 말한다.

마침내 1집부터 12집까지 빼곡히 들어선 시집과 시화들 앞에 당도했다. 시집의 제목과 한편, 한편 걸려있는 시 속에는 의료인이자 시인이 감내한 삶의 흔적들과 감정의 동요가 온전히 느껴진다. 윤 명예원장은 “시인의 작품은 신앙과 환자 그리고 자아성찰과 관련된 작품이 많다”고 소개했다.

특히, 제6집에서 환자를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로 표현한 작품은 애틋함이 차오른다. ‘떼어내야 한다. 떼어내야 한다. 흉물스러운 혹 떼어 내. 거뜬한 고운 맵시. 그토록 염원인데도 달려 흉한 원수야. 무슨 연고로. 너는 나로, 나는 너로. 이토록 마음앓이를 해야 하는가’

기자의 부족한 문학적 지식으로 유추해 봤을 때는 혹(마음의 병)을 떼지 못해 고통 받는 너(환자)와 나(시인)의 마음이 함축적 언어와 운율로 묘사된 것만 같았다.

윤 명예원장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운영할 계획”이라며 “2층 아트홀에서는 많은 시인과 작가들을 초청해 낭독회나 북 콘서트 등을 개최하는 한편, 회의나 결혼식 등 각종 행사에 대관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부디 많은 시민들이 오셔서 시가 품고 있는 고유의 감성과 매력을 느끼시고 마음이 따뜻해 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며 “가화의료재단은 모친의 설립 취지를 그대로 이어받아 앞으로도 환자들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예정”이라고 소망과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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