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대한민국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제20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촛불의 힘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더불어민주당은 5년 만에 착각과 오만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최종 득표율은 ‘48.56%(1639만 표)’ 대 ‘47.83%(1614만 표)’ 윤 후보가 제시한 정권교체의 길과 이 후보가 제시한 위기극복의 길 사이에서 민심은 마지막까지 냉정하게 여야를 저울질했고, 누구에게도 압승과 완패를 보내지 않은 채 ‘절묘한 견제와 균형’을 선택했다.
대선 기간 중 진행된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윤 당선인의 지지율은 이 후보에 비해 등락 폭이 컸지만, 정권교체론에 대한 지지는 꾸준한 동력을 유지했다. 선거전이 양강 후보의 비호감 대결로 점철되면서 형성된 반(反)윤석열 기류에서도 정권교체를 원하는 민심의 파고는 높게 유지되며 결국 승리의 버팀목이 됐다.
‘0.73%’ 차이의 치열한 접전은 어느 한쪽도 압도적 민심을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실상 1:1 구도로 치러진 대선에서 이 후보를 택한 민심이 비등했다는 점은 대선 이후 국민통합과 정치권 협치의 필요성을 선명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대 대통령들을 비롯해 해외 지도자들까지 당선 직후엔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통합과 협치를 강조했다. 각종 뉴스와 언론 지면 역시 통합과 협치에 대한 주제를 반복해 다룬다. 하지만 민심은 그 진정성을 신뢰하기보다는 선거 후의 절차 정도로 인식한다. 선거 후 통합과 협치에 대한 공언이 마치 공식처럼 됐기 때문이다.
필경 통합과 협치는 원래부터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이것이 뉴스가 되고 기사가 되는 2022년의 대한민국은, 결국 우리의 민주주의와 선거는… 어찌 보면 여전히 한 발 짝도 못 나간 듯하다. 그래서인지 씁쓸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국민통합은 국민의 절대적 요구다. 윤 당선인은 선거기간 중 ‘이대남’·‘이대녀’와 같이 극심했던 젠더(性) 갈등은 물론 이념, 세대, 지역 간 갈등을 하루빨리 봉합해야 한다.
통치자가 된다는 건 권력 획득을 넘어 인구집단과 맺는 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인으로서는 지지 세력을 결집해 단 한 명이라도 많은 상대적 다수가 되는 게 목표지만 통치자는 산술적 다수가 아니라 인구집단 ‘전체’를 책임져야 한다.
특히 수면 위로 갈등이 드러난 인구집단 외에도 그동안 대변되지도 대표되지도 않던 중·노년 여성이나 보건의료, 돌봄, 요양, 배달, 청소 등 사회 필수노동자의 삶도 면밀히 살피고 밝은 비전을 제시해주길 기대한다.
윤 당선인이 말하는 협치가 후보 단일화를 선택한 안철수 대표나 국민의당과의 합당만을 의미하지 않으려면 이재명 후보를 선택한 47.83%의 유권자들도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정국 속 협치 없이는 국정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고, 반대를 위한 반대 등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정치 악습도 현명히 돌파해야 한다. 승자독식과 진영정치를 막기 위해 야당 소속 유능한 인재의 등용을 고려해보라는 일각의 제언은 꽤나 설득력 있는 아이디어로 들린다.
선거기간 중 정치보복 논란을 불러왔던 ‘부패(腐敗)’청산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추진해야 한다. 적폐·부패 수사는 정치보복과 의미가 다르다. 정치보복이 특정인을 대상으로 ‘영혼까지 탈탈 터는’ 수사라면, 적폐 수사는 사건을 따라 편을 가리지 않고 범죄에 연루된 사람 모두를 수사하는 것이다.
정치보복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하지만 시스템이 잘못됐다면 바로잡아야 하고, 부패한 사람에겐 책임을 물어야 한다. 통합과 협치를 핑계 삼아 ‘좋은 게 좋다’는 듯 의혹을 어물쩍 덮는다면 윤 당선인이 강조하던 통합과 협치는 공염불(空念佛)이 될 수밖에 없다.
부디 윤 당선인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인에게 이번 20대 대선은 이기고 지는 승부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알 수 있었던 기회였기를, 국민에 대한 의무감과 국가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 계기였기를 바란다.
아울러 한쪽을 응원하고 선택했지만, 겨우 0.73%의 간격과 선택의 차이다. 이번 대선 결과가 어느 유권자에게는 기쁘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아쉬울 수 있지만, 종내에는 우리 손으로 선택한 집단지성의 결과에 대해 흔쾌히 인정하고 신뢰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곧 출항할 윤석열 호(號)의 거침없는 순항을, 5년 뒤 윤 당선인이 퇴임하는 날 온 국민에게 박수받으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