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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자의 시선 / 벚꽃엔딩 즈음에

GN시사신문 기자 입력 2022.04.20 16:10 수정 2022.05.17 11:10

이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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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연히,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휑한 아파트 공터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이를 TV에서 봤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을 증명한다며, 자전거가 더 빨라지면 시간이 달라질 거라는 도무지 이해 못 할 얘기를 하면서… 아이는 한참이나 자전거를 탔다.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꿈이라는 당시 9살의 소년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이해의 깊이를 보였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기초로 타임머신을 만들어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면서 여지없는 소년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시간여행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소년의 답변은 기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소년이 돌아가고 싶은 시간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가라앉은 바로 그 날이었다. “과거로 돌아가서 세월호의 형, 누나들에게 그 배가 위험하니 타지 말라고 얘기해 주려고”

많은 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던 그 날의 참사로부터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날의 비극이 없었다면 봄꽃보다 눈부셨을 열일곱 살의 아이들은 어느덧 20대 중반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극은 꿈이 아니었다. 그리고 국민은 그 배가 왜 침몰했으며, 왜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했는지, 그날 그 시각 국가는 무엇을 했는지 여전히 명쾌하게 알지 못한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304명의 아이가 허무하게 희생된, 국가가 책임을 유기한 참사에도 정치의 언어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진실과 거리가 먼 정쟁을 벌였다.

또 ‘세월호는 일종의 해상 교통사고’, ‘여객선 사고’라는 잔인한 말의 잔치도, 단식 중인 유족들 앞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는 치킨과 피자를 폭식하며 죽은 아이들을 오뎅이라 부르던 상식 밖의 야만적 광경도 매스컴으로 보고 들었다.

침몰한 배는 참사 1075일 만에 바다 위로 인양됐지만, 진실은 여전히 인양되지 않았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여러 가설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뒤로한 채 광화문에 자리를 지켜온 유족들의 천막도 5년 만에 철거됐다.

나는 그날 그 일이 진정 드물게 발생한 재난인지, 드물게 발생한 일이라 국가의 대응이 그리 무능했는지 아직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이후에 무엇이 개선되고 시스템화됐는지 쉬이 체감하지 못한 채 분노에서 무뎌진 오늘을 살아내는 중이다.

그리고 그날의 진상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까지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과 불신은 씻어내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벚꽃의 흩날림이 멈추는 즈음에는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 봄꽃보다 눈부셨을 열일곱 살의 아이들, 많은 이들이 함께 아파하고 안타까워했던 순간들은 오래도록 기억하리라 다짐한다.

TV 속 그 소년이 자신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 그날의 참사를 막아주길, 비극의 시간을 완벽히 바꿔주기를 기대하고 응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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