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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장진호의 영웅, 72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GN시사신문 기자 입력 2022.07.19 16:02 수정 2022.07.19 16:02

고 박진호 일병 신원확인, 보훈처-동두천시 귀환 행사 거행


6·25전쟁 당시 함경남도 장진군·함주군 일대에서 펼쳐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박진호 일병’이 72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가보훈처와 동두천시는 19일 북한 장진호 지역에서 발굴 후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을 거쳐 지난 2020년 조국으로 봉환된 고 박진호 일병의 신원이 확인됨에 따라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거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형덕 동두천시장, 김승호 시의장,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을 비롯 6군단장, 28사단장, 동두천시 보훈단체장, 신한대 사이버드론봇군사학과 및 경민대 효충사관과 학생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정오 국립서울현충원을 출발한 박 일병 유해는 군사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행사 장소인 동두천시국민체육센터로 이동했다. 시는 유해가 운구되는 거리에 태극기 가로기를 게양했다.

박 일병의 신원은 그의 남동생인 박진우(75)씨가 지난 2020년 동두천시보건소에 유전자(DNA) 시료 채취를 신청하면서 확인됐다. 이전까지 북한과 DPAA 하와이지부 등 총 1만5470㎞를 이동해 고향 땅을 밟은 고인의 유해는 봉환 당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국유단은 시 보건소를 통해 채취한 유족의 DNA를 분석, 가족관계 가능성이 큰 유해를 특정했고 마침내 지난달 형제 관계임을 밝혀냈다.

1928년 출생한 고인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징용돼 종 제작과 세공기술로 모은 돈을 꾸준히 부모님께 보내드렸고, 해방 이후에도 부산에서 같은 일을 하며 집안을 일으킨 효자로 알려졌다.

이후 고인은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8월 16일 23세의 나이로 입대, 일본에서 군사교육을 수료했으며 일본 징용 경험으로 일본어와 영어가 가능했기에 7사단 31연대 소속(카투사)에 배치됐다.

인천상륙작전과 원산상륙작전에 참전한 고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추운 곳에서 치러진 전투로 평가되는 장진호 전투(1950년 11월 27일~12월 11일)에서 교전 중 전사했다. 고인의 부모는 모두 별세했고, 유가족으로는 8남매 중 여동생 2명과 남동생 1명이 생존해 있다.

이날 국가보훈처는 호국 영웅에 대한 명예선양 의미를 담은 ‘호국 영웅 귀환패’와 전사자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했으며, 귀환 행사를 마친 유해는 인근 선산 가족 봉안당으로 봉송돼 고인의 부모 곁에 안장될 예정이다.

고인의 남동생인 박진우씨는 “부친은 형님이 돌아오지 않자 일본과 객지에서 힘들게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킨 효자였는데 가슴이 미어진다”며 안타까워했다고 밝혔다.

이어 “형님이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전쟁 중 북한에서 돌아가신 것에 억장이 무너졌는데 유해를 찾아서 감개무량하다”며 “부모님이 계시는 선산 봉안당에 빨리 모실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처장은 “72년이라는 세월 동안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간직한 채 살아오신 유가족분들께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는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분들의 명예선양과 예우에 만전을 기함으로써,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 보훈이 구현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신원확인으로 지난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개시된 이후 총 193명의 6·25전사자 신원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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