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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무소에서 심문을 받던 그는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한 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게 부끄러워 서명을 못하겠다”라며 조국 독립에 적극적이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광복회동두천연합지회장으로서 늘 자부심을 갖고 활동해 온 내게도 최근 부끄러운 기억이 생겼다. 얼마 전 치러졌던 제77주년 광복절 기념식 준비~진행 과정에서 느낀 선열과 그 후손에 대한 무례(無禮), 그에 맞설 수 없는 부족한 광복회장이라는 무력(無力)감 때문이다.
당일 행사를 주최한 ‘동두천시독립유공자추모회’는 철저한 자생단체로 광복절 기념식을 주최할 역사성, 당위성, 정통성이 없다.
독립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경기북부보훈지청의 지원을 받아 행사를 치렀으니 겉보기엔 멋들어져 보인다. 하지만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모든 과정, 아니 추모회 설립 이후 오늘날까지 이들은 관내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철저하게 무시했고 이용했다.
추모회 측은 지금껏 관내 독립운동가 후손 어르신들을 찾아뵙거나 안부를 물은 적도, 전화 한 통을 한 적도 없다. 그렇기에 광복회원들은 동두천시독립유공자추모회가 뭐하는 단체인지, 회장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그러던 추모회 측은 유족들이 모르는 유족 대표를 선정해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가장 연로한 광복회원에게 대뜸 전화를 걸어 행사장에서의 만세 삼창을 요청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감독이 배우를 ‘캐스팅’하듯.
또 다른 광복회원들에게는 ‘불러줬으니 와라’라는 듯한 무례한 태도로 일관했으며, 행사와 관련해 개진한 광복회 의견은 매몰차게 묵살했다. 이런 이유들로 아흔이 넘으신 한 광복회원께서는 ‘분하고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광복회장인 나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더 부끄러웠다. 하지만 참담한 심정을 애써 감춘 채 회원들을 내 손으로 행사장까지 안내했다.
행사 진행 역시 추모회의 입맛대로 변경됐다. 우리나라 국가 3대 행사(3.1절·제헌절·광복절)는 행정안전부 의전 지침에 따라 행사가 이뤄진다. 이에 따라 대통령도 단체 관계자 다음 차례에 기념사를 한다.
하지만 올해 동두천시 광복절 기념식에서는 독립·광복과 아무 연관이 없는 개인이 추모회장 자격으로 제일 먼저 마이크를 잡고 경축사를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쉽게 학교 개교기념일 행사를 예로 들자면, 교장(감)선생님과 같은 학교 관계자보다 운영위원장이 먼저 기념사를 한 것과 같은 형국이다.
‘독립’과 ‘광복’이라는 단어에는 단순한 명사 이상의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손톱이 빠져나가고, 귀과 코가 잘리고,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목숨을 잃는 등… 자신만의 방법과 온도로 일본에 맞선 선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쓸 수 있는 단어다.
그렇기에 아무 개연성 없는 단체가 독립이나 광복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안된다.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은 물론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하며, 그에 걸맞는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하지만 동두천시독립유공자추모회는 광복회가 추진한 니지모리스튜디오 여름축제 반대 의견에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해 왔고, 조산마을이 니지모리 측에 요청한 광복절 당일 휴장에 일말의 힘도 보태지 않았다. 그래서 추모회의 진정성과 순수성을 더더욱 신뢰할 수 없다.
부디, 꼭 내년부터 개최될 광복절 기념식은 동두천시청에서 제대로 주최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몇 분 남지 않은 관내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예의이자 존중이며, 동두천 독립운동의 역사가 부끄럽지 않을 최선책이라 확신한다.
끝으로 1910년 8월 29일은 일제에 의해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경술국치’일이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국권을 상실한 치욕적인 날이다. 경기도는 지난 2020년 ‘국기게양일 지정 및 국기선양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경술국치일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정했지만, 아직 모르는 이가 많다.
조례는 일제가 통치권을 뺏고, 식민지로 삼은 역사적 아픔을 되새기는 동시에 애국심 고취를 위해 제정됐다. 조기는 깃봉에서 깃면의 세로 길이만큼 내려 달면 된다.
이날은 관내 가정, 민간기업, 단체도 조기를 게양(오전 7시~오후 6시)해야 하는 만큼, 아무쪼록 관내 모든 곳에서 조기가 펄럭이길 희망해 본다.
*이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