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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FIFA월드컵 2026 홈페이지 |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자신이 왜, 여전히 축구의 신(神)이라 불리는지 증명한 리오넬 메시(Lionel Messi).
그는 2년 전 한 인터뷰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비평가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떠나야 할 때라고 판단되면, 나이와 상관없이 그렇게 할 것이다”라며 은퇴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리고 여기에 단호한 기준 하나를 더 얹었다. “내가 더 이상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은퇴할 것이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이어진 월드컵에서 메시는 ‘품격 있게 나이 드는 법’을 보여줬다. 통찰, 실력, 헌신, 겸손, 포용, 화합, 그리고 변치 않는 성실까지.
그중에서도 더 빛났던 것은 자기 자신을 가장 엄격하게 평가하는 태도였다. 그래서 누구도 그에게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 기초의회에서는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진다. 실수를 인정하기보다 사실을 비틀고, 책임을 지기보다 남의 탓을 찾는다. 자신의 말로 만들어진 상황을 방어하기 위해 새로운 말을 만드는 데 적잖은 노력과 시간을 쓴다.
의정활동은 시민을 위한 일이어야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거짓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소속 직원을 방패로 세웠다. SNS는 정치적 책임을 희석시키는 도구가 됐고, 진실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시민도, 의원 자신도 아니라는 점이다.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던 직원들이 의원들의 거짓말로 인해 비난받고, 정치적 논란의 한가운데로 떠밀린다. 잘못된 판단은 위에서 시작됐는데 책임은 늘 아래로 흐른다.
정치적 손익 계산 앞에서 사실보다 퍼포먼스와 프레임이 앞섰고, 반성보다 변명이 먼저였으며, 공익보다 의원의 사욕이 우선됐다. 그것도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이런 정치는 대체 누가 가르치는 것이며, 어디서 배우는 것일까?
메시는 자신이 동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을 은퇴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다. 기초의원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지금 시민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가. 나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가, 아니면 사실을 가리고 있는가. 나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보호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정치와 이익을 위해 희생시키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스스로 고개를 들지 못한다면,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양심이다. 정치는 결국 자기 객관화의 싸움이다. 자신을 가장 엄격하게 평가하는 사람은 시민의 신뢰를 얻고, 자신에게 가장 관대한 사람은 결국 시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메시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수많은 골이 아니다. 자신이 언제 빛나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만이 끝까지 존경받는다는 사실이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실수가 정치인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거짓을 감추기 위해 동료와 직원을 희생시키면서도 스스로는 잘하고 있다고 믿는 순간, 시민은 그 정치인의 유효기간이 끝났음을 가장 먼저 알아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민은 더 이상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기억한다.